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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

국제자원활동을 통해서 경험하는 세계

(화홍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특강 시간에 활용했던 자료입니다. 이전에 작성했던 원고를 살짝 수정해서 작성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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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자원활동를 통해서 경험하는 세계

 

강사 : 하재웅 jj755@hanmail.net

 

주고받는 봉사가 아니라 교류의 메신저로서 국제자원활동

한국에서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무엇인가 나눠줄 것이 있는 사람들이 가난하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돕는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그러한 마음으로 국제자원활동을 시작했으나 경험을 하다 보니, 실제 활동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키르키즈스탄 지체장애인 시설에서>

 

국제자원활동을 하는 국가는 대부분은 개발도상국가들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영어가 통용되기보다는 각 지역에 있는 현지어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데 현지에서 활동을 시작하는 봉사활동가들은 현지어 능력은커녕 현지를 처음 가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의식주(衣食住)도 혼자서 자립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의식주(衣食住)도 혼자서 자립할 수가 없는데, 현지인들을 위해서 어떠한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한다는 것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실제로는 정말 많은 도움과 사랑을 받고 돌아오게 된다. 더욱이 국제자원활동의 본질은 현지에 어떤 도움을 주고 오는 것이 아니라, 활동가의 교육적 효과에 가장 큰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활동은 도움을 주고받는 개념이 아니라 각각 서로 다른 문화를 나누고 오는 교류적 의미가 매우 강하게 된다. 물론 활동은 현지인들의 경제적 자립 혹은 계몽을 위한 교육적 활동이 많지만, 이것도 모두 각각의 활동 매체를 통한 교류(교육을 통한 교류, 농업개발을 통한 교류 등)활동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몽골의 국제기아대책기구에서 경험한 국제개발NGO 그리고 다문화

지속적으로 이 분야에서 활동을 하다보니 NGO, INGO, 정부기관을 통해서 국제자원활동을 경험할 수 있었다. 따라서 각각의 특징을 본 강의안에서 나눠보고자 한다. 처음 경험했던 기관은 코피언(COPION)을 통해서 파견된 국제기아대책기구(KFHI) 몽골지부이다. 무엇보다 NGO의 특징은 활동의 자율성에 있다. 자원활동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보다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특징도 있고, 형식과 절차에 구애를 적게 받기 때문에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현지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도 NGO활동의 강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정적인 빈약함은 활동의 제약성과 활동가들의 현실 문제라고 하는 활동의 벽을 느끼게 하고 있다. 그러한 상황 때문에 상근자들의 변동이 심하게 되므로 자원활동가들의 교육과 활동의 체계성이 약해지게 되고, 자원활동가들의 장기적(직업적) 활동에 대한 불안감 등이 악재로 작용하게 된다.

<몽골에서 진행된 농업개발 프로젝트 : 지도자 교육>

 

강사가 몽골에서 했던 활동은 크게 한국어 교육과 농업개발프로젝트이다. 활동했던 1999년에도 몽골에서는 한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기 때문에 한국어에 대한 수효는 적지 않았다. HOT를 좋아해서, 혹은 선교적 목적으로, 어떤 이는 경제적 이주에 대한 열망으로 공부를 시작하는데 대부분 열심히 공부를 했기 때문에 큰 보람을 느끼면서 교육을 진행할 수 있었다. 현지 2년제 대학에서 강의를 했을 때는 대학생 신분으로 교육자와 학생의 관계 그리고 교육 철학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심도 깊은 고민을 하면서 학생들을 대할 수 있었고, NGO기관에서 진행했던 현지 직원들의 한국어 교육 강의는 특정 집단의 한국어 필요가 어떻게 요구되는지를 깊이 배울 수 있었다. 공개강좌 식으로 진행된 일반인 교양강좌 강의에서는 비교적 다양한 연령과 다양한 학력의 소지자들과 접하면서 현지의 문화를 더 깊이 체험할 수 있었다. 한국어 교육을 통해서 가장 깊이 배운 것은 내가 공부하는(전공인) 언어학이 실제로 왜? 필요한지 그리고 현장에서는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깊이 느끼고 체험한 것이다. 때문에 복학을 해서 받았던 전공 수업에서 어떤 관점과 어떠한 맥락을 가지고 학문적 이론을 습득해야하는지를 알 수 있는 매우 귀한 경험이었다.

몽골에서 진행했던 농업개발 프로젝트는 문화적 다양성의 깊이를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난 25년 넘게 한국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농업문화가 어떤 것이지를 알 수도 없었다. 그냥 공기처럼 내 안에 그리고 내 주변에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그 존재를 너무나 당연하게 느끼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몽골은 유목민들의 문화였다. 그래서 그 격차를 깊이 각인시켜주는 토대가 될 수 있었다. 현지인들에게 씨를 주고 키우는 방식을 알려주어도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그들은 너무 어려워했다. 상대적으로 보면 몽골인들은 20년 넘게 차만 타고 다닌 여성이라고 해도 말을 타면 하루만에 초원을 달릴 수 있는 유전적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며칠을 배워도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은 것과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차이 때문에 각 작물의 키우는 법을 설명만으로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고, 한명의 한국 직원이 몽골의 각 지방까지 담당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수확의 생산량도 한국에 비해서 형편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에 일정부분의 노력만 하면 가시적 효과가 나오는 활동이여서 현지인들의 반응도 좋았고, 이를 통해 현지인들을 깊이 사귈 수도 있었다. 또한 새로운 작물을 나눠준 경우에는 그 작물의 요리법까지도 알려 주어야했기 때문에 음식을 통한 현지인들과의 교류도 즐겁게 진행할 수 있었다.

 

GBA를 통해서 배우는 세계시민의식

다음으로 경험을 했던 기관은 GBA(Good Book For All)이라고 하는 INGO였다. 쉽게 설명하면 피스보트처럼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면서 활동을 하는 것인데, 피스보트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GBA는 기독교를 배경으로 하는 선교적 목적이 강하다고 하는 것이다. GBA를 통해서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등지를 돌면서 했던 주된 활동은 국제친선과 교류였다. GBA의 역할이 책(정보)을 통해서 정보를 교류하는 교육적 활동이 많았고, 지역의 자치 조직들과 연대하면서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활동이었으므로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는 여러 기술과 방법들을 몸으로 익힐 수 있었다. 특히 GBA에는 세계 36개국에서 모인 320여명의 활동가 들이 한 배에 모여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배자체가 하나의 유엔과 같은 곳이다. 그렇게 다양한 국적자들이 한 공간에 모여서 생활하기 때문에 각 국가의 특징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된다. 개인주의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유럽친구들, 국가적 정체성이 강한 미국친구들을 비롯해서 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난 아프리카 친구들까지 각 국가별 친구들의 행동과 성향들을 통해서 각 국가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게 되기도 한다.

다양성이 즐거움의 요소이기도 하지만, 어려움의 요소이기도 하다. 대다수 한국인들이 경험하는 어려움은 우선 의사소통이다. 다양한 국적이 존재하다보니 공용어가 필요해지는데, 활동가들이 사용해야하는 공용어는 영어이다. 자원활동이기 때문에 함께 활동을 할 때도 서로 토의를 하면서 진행을 해야 하고 사람들과 관계와 일도 모두 영어로 이루어지는데, 생활에 극히 일부분에 있던 영어와 모국어의 비중이 전혀 바뀌게 되는 상황이 대다수 한국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 된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외향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언어적 어려움 때문에 대인관계의 기피까지 경험했을 정도이니 그 고통이 적지 않았음이 짐작 가능할 것이다. 또한 영어에 대한 취약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업무에 있어서도 사무직으로 가는 경우보다 노동집약적인 업무로 배치 받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20대인데,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거나 휴학 중인 청년들이 노동에 얼마나 익숙할 수 있을까? 나는 갑판에서 일을 했는데, 청소하는 일을 비롯해서 페인트를 벗겨내고 칠하고 하는 일 등은 때로는 생각보다 많은 체력적 소모를 가져오기 때문에 노동의 고통 속에서 많은 인내를 감수해야만 하기도 했다.

당시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미국에서 일어났던 911사태이다. 당시 나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배에 탑승하기 위한 사전 교육으로 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함께 훈련 받는 동료들 중 상당수가 미국 친구들이었다. 만약 그러한 상황을 한국에서 접했다면 그저 안타까워하며 말았을 테지만, 당시 함께 새로운 생활을 위해서 훈련을 받던 친구들의 가족 혹은 지인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 울부짖는 친구들의 눈물을 보면서 함께 아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의 경험은 국제문제를 세계시민의 관점으로 보고 느끼는 첫 걸음이 되었다. 또한 세계시민으로 의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어떠한 것인지를 경험하는 것이 된다. 다양한 국적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 속에서 구분되어지는 나와 한국인의 특징이 어떤 것인지 배울 수 있어서 감사했다.

 

정부 파견의 혜택과 제도적 한계

다음으로 경험했던 것은 한국국제협력단(이하 KOICA)을 통해서 진행되는 한국해외봉사단원 활동이다. KOICA를 통해 중국 헤이룽장 성에 파견되었고, 주된 활동은 한국어교육이었다. 대학에서 외국인 강사로 있었기 때문에 종래에 경험했던 국제자원활동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애매하게 적지 않은 활동비와 적립금이 지급되었고, 활동에 있어서 국가차원의 협조와 지원도 있었다.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에 있었기 때문에 보다 편하게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대학이라고 하는 환경 속에서 외국인 교수라고 하는 조건으로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컸으며, 학생들을 위한 지원도 다양하게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교육적 질을 높이기 위해 현지 KOICA 사무소는 각종 물품과 교육 자재를 지원했으며, 주어진 지위를 가지고 한국인 기업들과 접촉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의 취업도 비교적 수월하게 지원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 지원비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학교로부터 장소협조를 받아 KOICA가 지원하는 한국어 교육센터도 건립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서 학생들은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보다 좋은 환경을 갖출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많은 혜택 가운데서 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모든 단원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지원할 당시 기존에 파견하던 인원에서 갑작스럽게 350%나 증가되던 해였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들도 드러났다. 수요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현지기관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을 받던 단원들이 안타까워서 후배들에게는 그러한 과정이 되풀이 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무무소와 연락을 하며 단원들이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기관까지 찾아냈지만, 그에 따른 기관의 업무처리 형태는 너무나 행정편의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단원에게는 파견 조건을 논의할 수 있는 권한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현지 사무소의 방문을 막연하게 기다려야하는 상황도 있었고, 단원이 활동할 환경이 중요하므로 단원의 입지를 만들어 줄 수 있게 세부적인 조건까지도 기관과 조율해 달라고 요청도 해봤으나 직원들은 단순한 행정적 절차에만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단원의 입장에서 소속기관의 활동보다는 한국어 분야의 파견자로서 좀 더 한국어 보급과 현지인들의 한국어 인식 확산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 의욕적으로 ‘한국어 교사 양성자 과정’교육과 외부 강연 활동을 진행했지만 현지 사무소는 그러한 활동에 지원은커녕 당시 기관 외 활동을 꺼려하는 소속기관의 간섭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해주지도 않아 무척 아쉬웠다.

 

 

국제자원활동의 발전을 위한 경험자의 제언

어떠한 기관에서 활동을 하던지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배우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러한 배움의 터전으로 어떠한 기관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에 대한 고려이다. 사전 교육을 비롯한 전형과 조직 운영 방식 면에서 내가 경험했던 3개의 기관을 비교해 보면 단연 INGO의 방식이 가장 발달되어 있었다. 선발하는 조건에 있어서 아주 구체적으로 세분화되어 있고 지원자들의 동기를 철저하게 점검하며 추천인의 비중도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자발적 활동을 중시하는 문화적 풍토도 잘 작동하고 있었으므로, 모든 활동은 보다 활력적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선배 활동가들에 대한 신입 활동가들의 지원도 잘 정착되어 있었다. GBA는 독일에 본부를 두고 있었고, 행정적 시스템은 대부분 서구 사회의 제도적 틀이 많았는데, 3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를 잘 적용하고 있었다. 한국은 서구 사회에 비해서 이러한 활동의 경험이 미약하므로 선진 사례에 대한 조사를 통해서 이를 한국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인 여건 상 이러한 제도화 적업에 정부가 주도해서 체계를 갖추고 그렇게 만들어진 내용들을 국제개발단체들에 보급하는 활동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지원체계에 있어서도 한국은 NGO와 GO사이에 상호 보안적인 활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중장기 국제자원활동의 경우 젊은 참가자들은 이러한 활동을 위한 재정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재정충당을 NGO가 하기에는 아직까지 어려움이 너무 커 보인다. 그러한 국제개발NGO들의 활동도 그렇고 그러한 활동에 참여하는 활동가들의 역할도 국가적 필요에 의해서 진행하는 만큼 정부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국제자원활동을 폭넓게 지원할 필요가 있다.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국제자원활동

최근에도 많은 후배와 제자들의 진로를 상담하면서 가장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하는지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은 현장 경험을 통해서 충족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런 현장 경험이 국제자원활동에만 국한 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자만 지금의 젊은 학생들에게 세계화라고 하는 화두는 일부로 제한 둘 수 없는 큰 흐름 속에 있다. 앞으로 어느 영역에서 활동을 하던 우리의 활동 무대는 세계일 수밖에 없고 그러한 세계 속에 올바른 글로벌 인재로 만들어지기 위해 경험할 만한 활동을 추천하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국제자원활동을 추천한다. 나도 그러한 활동들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도 국제활동가로 현장에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러한 경험을 각 기관과 학생들에게 소통하며 우리가 함께 살아갈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