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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와 만남/국제활동정보

버마와 태국 국경지대에서 갖게되는 현장 교육의 고민들

최근 메일을 통해서 주고 받는 내용을 지켜보았는데, 질문도 그렇고 답변도 그렇고 혼자만 구경하기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질문과 답변을 공유합니다. 질문은 버마와 태국 국경 지역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김보라'님으로 부터 전달된 내용이고, 이 내용을 김동훈 국제개발아카데미 원장님이 수신해서 관계자분들과 나누면서 만들어진 답변 중에서 곧 우간다로 출국하실 이상훈 선생님께서 작성해주신 이야기입니다! 관련 홈페이지는 http://sites.google.com/site/studymaesot/


<매솟지역에 사는 카렌족 어린이 모습>

안녕하세요. 메솟에 있는 김보라입니다.
여태 인터넷이 안되는 환경에 있다가, 제가 일하는 기관 옆에 있는 이주민 아이들 학교 사무실에서 주중에는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일과가 끝나고 머무는 숙소에서 사이트를 통해 생생한 소식을 전하면 좋겠지만, 그곳에는 인터넷 연결이 불가능해서 어쩔수없이 요렇게 미루고 있습니다. 국제개발아카데미 분들은 잘 지내시는지요? 사이트나 까페를 통해 보다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하고 싶지만, 환경+저의 게으름 덕분에 아직까지는 '적응'하는데에만 시간을 보냈네요.

 전 버마에 집을 두고 태국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버마 이주민 아이들이 머무는 기숙사에서 같이 지내게 되어서 모든 일과와 생활을 카렌 사람들과 같이 하고 있어요. 아이들로부터 조금씩 말도 배우고 있고,매일 카렌 전통음식인 개구리 고기, 닭심장, 뱀요리, 우리나라 된장,고추장과 같은 개념인 생선paste로 하루 세끼를 해결하면서 조금은 빡센 적응기간을 보냈습니다.^^; 여기에서는 청량고추는 매운 고추 축에도 안드는것 같아요.음식이 너무 매워서 입술이 그대로 타서 증발하는 줄 알았습니다. 구아바를 소금이랑 매운 고추 가루에 찍어 먹는데, 전 왜 이렇게 맛있는 과일을 고통스럽게 먹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더라구요.^^ 요즘은 여기 사람들처럼 왠만한 건물 주위에서는 왠만하면 거의 맨발로 다녀요.ㅋㅋㅋ

 그동안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멜라 캠프에 가서 카렌족 유명한 가수도 만나보았고, 메타오 클리닉에서 열린 생일잔치, 산간 마을에 열린 카렌식 결혼식에도 가보았는데, W 에서 보았던 극한의 빈곤이나 피폐한 이주민의 삶보다는 아직까지는 웃음을 더 많이 본것같아요.아직은 이곳의 실상을 덜 보았다는 이야기겠지요...

이곳에는 정말 많은 NGO 단체, 활동가,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외국 기관들이 많아서 넉넉치는 않지만 어떻게 보면 오히려 한국보다 건강한 Civil Society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정부가 할일을 모두 시민단체에서 하니 보다 신속하면서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현지인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것 같아요. 반면에 그만큼 체계도 없고, 강력한 권한도 없어서 때로는 외부 후원자들의 입맛에 맞추는데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마침 다음주에 3일간 열릴 메타오 클리닉 joint donor's meeting에 참석하게 되었어요. 그곳에 가면 보다 실상을 잘 알게 될것같아요.

이곳에서 있으면서 아이들 '교육''과 관련하여 한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는데,어떠한 태도가 바람직한지 여쭤보고싶어요.  예전에 유네스코 건물에서 열린 ODA 월례토크에서 한 활동가님께서 말씀하신 "커뮤니티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초등교육 정도만 지원한다"고 하셔서 다른 생각을 가진 참가자들과 약간의 활발한 토론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도 같은 이슈가 제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제가 머물고 있는 사뚤레라는 학교에서 자원봉사 교사로 2년간 머물고 있는 한 영국인 청년이 있는데, 그 분이 고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재를 제가 보니 만만치가 않더라구요.일단 에세이 작문 학습을 위해 아이들에게 읽히는 책은 약 320페이지 짜리 '안네 프랑크의 일기' 원판이고 역사,지리를 가르치기 위해 사용하는 교재도 제가 보기에도 단번에 연습문제가 풀어지지 않는 난이도가 있는 교재라 시험기간인 요즘 아이들이 공부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어요.혼자 공부하기 벅차서 다른 카렌인 선생님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선생님들도 잘 모르시는지 대답을 해주지 않는데요.^^;

 그래서 어제 그 교사에게 가서, "여기 아이들은 확실히 내가 지난주에 만난 다른 마을의 아이들보다는 영어를 잘한다. 당신이 영어를 정말 잘 가르치는것 같다.그런데 몇몇 아이들은 당신이 가르치는 에세이,역사 수업은 정말 어렵게 생각한다." 고 슬그머니 말해보았습니다.  그러니 그 영국인 교사는 "버마 전체에서 매년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가는 아이들은 단 300명 뿐이다. 특히 이곳 아이들 부모들은 마땅한 수입이 없기 때문에 굉장히 높은 경쟁에서 이겨야만 이 아이들이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갈 수 있는데, 어려워도 이렇게 가르쳐야만 도전해 볼 수 있다. 이 아이들이 대학에 가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면 나중에 얻게 되는 직업은 청소부와 같은 단순 노동직에 불가하다." 라고 대답하더라구요.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 싶어하는 교사의 마음에서 그랬나봅니다.

 그런데, 경력이 20년은 넘음직한 한 현지 교사의 의견은 또 다르더라구요.그 선생님은 말하길, "현실적으로 아이들의 사정상 10명 중 고작 1~2명만이 대학에 가게 될 것이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들 버마에 있는 고향에 돌아가서 일을 하게 될 것인데, 조그만 마을의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싶어도 고등학교에서 한 두 과목에 Fail 기록이 있게 되면 아무도 그들을 교사로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의 고향에서의 미래를 위해 조금 수준을 낮추더라도 아이들이 좋은 기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 이미 그 선생님과 이야기를 했지만, 고집이 상당하다." 라고 했습니다.

 한국사회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 영국인 교사처럼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가는것을 선호할 테지만, 이 문제를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보자면 현지 교사의 의견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국제개발'의 이슈는 인류 문화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요소를 복합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주제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궁금한 점은 우리나라에도 난민이나 무국적 신분의 학생에게도 입학을 허용하는 학교가 있는지 혹시 아시는지요? 뛰어난 아이들의 경우 캐나다나 영국, 호주 등지에서 난민 신분의 학생에게 제공하는 특례 입학을 통해 유학을 가기도 하더라구요. 제가 있는 학교 기숙사에는 한국 드라마나 노래를 통해 한국을 좋아하게 되어서 나중에 한국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키우고 있는 아이들도 있어서 도와주고 싶은데, 도저히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지난번 제 친구 라운처럼 버마족, 버마시민권이 있는 아이들은 정부 장학금을 통해 한국 대학에서 수학하는게 가능하지만 이 아이들은 경우가 달라 조금 난감한것 같습니다. 인터넷으로 알아보고는 있는데, 한국 학생에게도 높은 등록금을 물리는 우리나라 대학교에 많은 것을 기대하기가 쉽지가 않네요.ㅋㅋㅋ

  간만에 너무 많은것을 여쭈었습니다.저에겐 정말 모든게 정말 어렵고 불가능해보이는데, 현지인 지도자들은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일들을 할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에요.빌게이츠나, 안젤리나 졸리같이 갑부가 되어서 어려운 사람들을 마음껏 지원하는게 차라리 쉬울것 같네요.  그럼 안녕히계세요.

-김보라 드림-


나누어 주신 김보라 씨의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열정이 가득한 청년이라는 것은 단박에 알아보겠습니다.  한국의 미래는 제가 생각하는 것 보다는 훨씬 밝은 편이네요…배포하신 명단을 보니 아는 분들이 많아서 이렇게 전체회신을 누릅니다. 한 번쯤 생각을 해 봐도 좋은 문제네요. 

자원봉사를 하는 영국청년과 현지인 선생님의 두 개의 다른 답변은 개발이라는 분야의 해묵은 숙제를 다시 보는 듯 합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클래스에서 이런 debate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및 보통교육을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인도네시아의 교육정책과 엘리트 교육을 집중 지원하는 인도의 교육정책을 놓고 어느 쪽이 효과적인 개발 관련 교육정책이냐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의 국적이  다 다르고 자신들의 국가가 아니니 일천한 배경지식을 갖고 시작한 토론이었으니 난상토론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론은 없었습니다. 예상하시다시피…….지극히 상식적인 대답이라면 보통교육의 이념을 구현하되 엘리트 교육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결론 비슷한 것이 제 머리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의 경험은 보통교육의 보급이 국가개발의 견인차가 되었다라고 외부에서 평가를 하더군요.

(그런데 사실 그럴까요? 한국이 자랑하는 개발 경험의 견인차들이 과연 공돌이 공순이라고 비하해서 부르든 그런 사람들의 피땀으로만 이루어진 것일까요? 아니면 애국심으로 충만하고 탁월한 경제지식으로 소위 해외유학파들로 구성된 엘리트 관료들과 기업인들의 손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일까요?)

 인도네시아와 인도의 국토면적, 자원,인구, 과거 현재의 교육의 전통, 모든 수치를 비교해 봐도 딱히 어느 길을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못하겠다는 것이 학생들의 이야기였고 옳다 그르다 라고 하기 이전에 일단 한 번 해 보고 성공과 실패의 현저한 결론이 나와봐야 겨우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아시다시피 두 나라는 아시아의 잠재적인 경제대국으로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인도는 미국의 실리콘 밸리를 점령하고 있고  NASA에서 절대다수의 과학자들을 배출하고 있고 마드라스 공대는 MIT와 아금버금하고 있죠. 9억 인구의 서민의 삶의 질이야 어떻든 개발의 견인차 역할을 엘리트에 걸 수 밖에 없는 나라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세월에….. 그 많은 인구들에게 양질의 보통교육을 실시하는 쪽으로 희망을 걸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인도네시아가 풀뿌리 민중을 중시하는 전인적 교육이념에 충실한 나라냐고 물으신다면…. 여전히 문제가 많은 나라겠지요? 귀족이나 다름없는 계층이 존재하고 대통령도 정치인도 ‘가문의 영광’ 영화를 보는 듯한 나라인데요 뭘….  이야기가 거창해졌지만 카렌 족 마을에서 일어나는 교육의 상황도 똑 같은 종류의 고민이라 보입니다. 저는 두 주장 다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의사와 교사입니다. 처음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것은 아이들에게 꿈꾸어 볼 수 있는 미래는 그들이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가 있는 이 두 직업 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 변화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전진할 수 있지만 그것이 없으면 저희가 지어 준 교실에서 애들은 엎어져 자고 도서관은 창고로 변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사람은 본 것 이상을 넘어가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role model이 되어줄 선배, 어른, 모범이 존재해야 하고 그런 한 명의 hero가 미치는 영향은 결국 전체 수준을 올려놓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전 극소수의 몇 명의 경쟁에 잘 적응하는 학생을 배출하는 것이 교육 목표와 이념의 전체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이 대표적인 표본이겠지요. 소수의 성적이 높은 학생들을 만들기 위해서 전체에게 끊임없이 ‘A winner takes all.’ 이라는 개똥철학을 불어넣는 것이 현실이 아니겠습니까? 아주 작은 숫자의 분자 밑에 깔리는 거대한 분모가 점점 커져가는 사회에서 내 자식이 살아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습니다. 다수의 절망과 좌절감이 어디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닐 겁니다. 

패기만만한 영국청년은 더불어 같이 공부하는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없는 선생 밑에서는 이기적이기만 한 개천의 용이나 이무기가 나올 가능성이 다분하고 brain drainage를 막을 길이 없을 거라고 한 마디 충고하고 싶고요. 현지인 선생님께는 몇몇의 너무 떨어지는 학생들에 대한 배려도 공정한 틀에서 있어야 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학생 몇몇의 길을 열어주는 일은 어쩌면 생각보다 큰 투자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참으로 큰 차이의 문화권 속에 살아가네요…..individuality vs. community…..

그래서 전 공동체 성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입니다. 모두에게 적성에 맞고 원하는 방향대로 제공될 수 있는 교육…너무 이상적입니까? 공동체성을 위해 초등교육만을 실시한다고 하신 분은 아마 평화재단의 유 실장님이셨던 것 같은데 제 기억으로는 정확히는 ‘몇몇 자질이 있는 아이들은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미래 공동체의 리더로 또는 다른 모습으로 공동체에 기여하도록 하고 다른 아이들은 적성에 맞는 직업훈련이나 전문분야의 교육을 실시한다.’ 라고 하셨죠. 전 아이들을 기르는 부모님들이 공동체성의 필요성에 대해 절실히 이해하고 받아들이신다면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자기 아이가 공동체 내에 학문적인 소양이 그리 뛰어나지 못해 대학을 진학하는 것 보다 공동체에 훨씬 유익한 자동차 정비와 중장비 기술을 배우러 다니는 것을 흔쾌히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사실 아이들은 문제가 없을 겁니다. 질투와 시기심은 인간 본성에 해당하는 것이긴 하나 아주 어릴 때부터 공동체를 경험하고 자라나면 그렇게 심하게 그걸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소아적인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될 겁니다. 모두가 서울법대를 가도록 몰아대는 것보다는 천배 만배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어릴 때 시골에서는 형님 누나들이 아버지와 함께 농사지으면서도 흔쾌히 동생들이 학교를 다니는 일을 받아들여주지 않았습니까? 제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은 너무 쉽게 말하는 건가요?

저는 그래서 개천에서 나는 용도 필요하고 실개천의 미꾸라지들도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어찌 개천에 모두가 용이고 모두가 미꾸라지여야겠습니까? 너무 보수적인 아저씨들의 유사한 것 같아 저도 섬뜩합니다만…..모두가 평등한 인간이라는 당위성도 그러나 모두가 똑 같은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이 공존하는 까닭에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전 가난한 아프리카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며 글과 셈을 깨우치는 기쁨을 맛보며 그 아이들 중에는 영민한 아이가 있어 자신의 나라와 민족을 책임지는 좋은 지도자로 성장하고 있다고 믿고 살아가는 편입니다.  결과야 제가 죽고 난 뒤에나 볼 것 같아서….교육은 백년지대계 라 하지 않았습니까?

이만하면 첫번째 물음에 제 답을 나름대로는 열심히 써 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모르겠습니다.
아카데미 원장님께 약속한 숙제를 제출합니다.

- 이상훈 드림 -